학교였다.
건물 두 채가 앞뒤로 평행하게 붙은, 말하자면 대학보다는 고등학교라고 짐작되는, 학교의 건물.
본관에 있든 별관에 있든 창문 너머로 서로의 모습이 들여다 보이는 그런 학교였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앞 건물에서 뒷 건물을 보고 있는데
창문으로 익숙한 동물이 스윽 복도를 거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린이었다. 키가 아주 커서, 1층의 창문으로는 목 위까지 다 보이지 않는 기린.
- 와, 여기서 이렇게 기린을 보게 되다니!
우리가 세렝게티에서 가장 매료되었던 동물이 기린이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예쁜 동물.
주변에 제각각 떠드느라 정신 없는 친구들이 보기 전에 녀석이 지나갈까 봐,
저것 좀 봐, 기린이야 기린! 내가 말한 기린! 우아하지? 하고 막 사람들의 주의를 청했다.
그런데 그 순간,
기린이 휙, 방향을 틀더니, 학교 건물 밖으로 스스슥 빠져나왔다. 그리곤 우리를 향해 걸음을 뗐다.
우아해도 야생 동물이니 멀리서만 보고 싶었는데 그 녀석이 멈춰 서서 이 쪽을 보았다.
녀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방향을 튼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텔레파시 통하듯 알아버렸다.
나야? 왜, 왜 나야! 하고 당황하면서 뒷걸음질쳐 도망가려고 했는데,
말은 안 하지만 분명히 녀석이 나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망가려는 내 마음까지 읽어버린 녀석이, 그 거대한 기린이, 속도를 높여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재난 영화의 긴박감이었는데...
심장이 터지기 직전에 번쩍 눈을 떴다.
깨자마자 테스트했더니
소변이 닿자마자 변하는 선명한 두 줄.
복숭아라던가, 황금빛 돼지라던가, 꽃사슴이라던가..
그게 아니라.
기린이라니.
우리가 그린 기린 그림.
어떤 녀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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