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Australia, '10.09-'11.03)
지인들에게 전하는 시드니 홈리스들의 소식
Abby.
2010. 9. 14. 08:38
시드니는 아침 일곱시 반입니다. 침대 여섯 개짜리 도미토리에도 해는 듭니다.
장군은 아직 자고 있어요, 동티모르 함께 다녀 온 개척자들에서 요청한 글이 있어 어제 새벽 두 시까지 잡고 있었는데, 그는 완료했고 저는 실패했습니다. ㅎㅎ 수많은 글을 짧은 글 한 편으로 줄이는 게 잘 되지 않더라구요. 밤새서 끝장을 볼까 했으나 그런 몰골로 인터뷰 가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장군 말에 얌전히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로 시드니 생활 여드레째, 아직 오페라 하우스조차 가 보지 않은 게으른 여행객입니다. 아직 둘 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아서,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면서 하이드 파크나 보타닉 가든에서 쉰다거나, 거대한 세인트 메리 성당을 아, 여기가 거기야? 하고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습니다. 동네 마트에서 매일매일 장은 보고, 책방은 기웃댑니다.
그런데 매일매일은 참 짧습니다. 일 없이 바쁘다는 건 이런 경우인가 봐요. 시드니 모든 곳을 걸어 다니고 있어 한 번 나갔다 하면 걷는 데만 두세시간이 훌쩍 가고, 웬만하면 밥을 해 먹고 있으니 먹을 궁리하는 데도 시간이 가고요. 너 시드니 오피스 갈 때 이것과 다른 몰골로 가면 곤란해 응?, 하고 회사에 있을 적 사진 하나를 메일로 보내신 대표님 경고에 아 제길, 귀신 같기는, 투덜대며 비싼 시드니에서 상설할인매장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아, 시드니 도착하고 몇 일은, 문 연 폐가 상태였던 블로그를 뜯어 고쳤습니다. "개발자란 방법을 찾아볼 생각도 않고 일단 어렵다고 하는 구태의연한 인간들", "기획자란 구체화시킬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디어만 들이미는 사나운 인간들"이라고 혹독하게 서로를 비난하던 날들이 이틀 정도의 밤샘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서로 원하던 모양의 블로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갖게 됐습니다. 뭐야, 이 휑한 걸 하느라 왜 밤을 새? 하실 지 모르지만, 언제나 어려운 건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니까요. ㅎㅎ 여전히 집만 있고 아직 거의 채우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제부터 정리해 볼까 합니다. 그래도 묵혀 둔 큰 숙제를 하나 마친 느낌이라, 둘 다 마음이 개운합니다.
그러니 장군은, 건강합니다. 깨끗이 나았고, 아직은 별다른 후유증이 없어 보입니다. 저와 싸워 가며 블로그 뜯어 고칠 의욕도 기운도 있습니다. 다만 살이 좀 더 빠져서 그제는 지오다노에서 면바지 사이즈 30을 사서 입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호리호리하니 예쁩니다. 여기서 근육만 좀 키워보자, 하고 (당연히 그가 아니고 제가) 의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저희가 알고 지낸 지 10년째, 제가 그보다 더 많이 먹는 시절, 그에게 때마다 "더 먹어"를 연발하는 시절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요새 신정환 덕분에 모두 뎅기열을 알게 됐다지요? 저희는 늘 트렌드를 앞서 갑니다, 아시잖아요. ㅋ
저 역시, 어느 때보다 건강합니다. 장군은 자기가 아파 제가 아플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합니다. 그러게요, 장군이 앓을 때 저 역시 좀 아팠으나, 제게 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토실토실합니다. 적도 근처에서 한 달 반을 지내면 쪽 빠질 줄 알았는데 왠걸요, 저는 음식도 안 가리고 머리만 대면 잘 자고, 덥지만 더워서 혀 빼물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도 아니었고, 스트레스 안 받고, 그저, 잘 지냈습니다.
여행은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그 많은 이야기들을 짧게 할 재간이 없어 뭉뚱그리자면 지금으로선 마치 결혼처럼, 상상보다 훨씬 더 진폭이 큰 경험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무척 행복하나 벌써 멈추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끝없이 즐겁지만 죽도록 힘이 듭니다. 많이 웃었지만 또 많이 크게 오래 울었습니다. 아직은 앞으로에 대한 생각은 들어설 틈 없이 저희들 자신에 대한 직면과 지난 날들에 대한 생각에 신나게 얻어 맞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분명하게, 저희들이 아주 조금씩 예민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하나님이라는 분이 실재하시고, 말씀하시고, 보잘것없는 우리 두 사람의 인생과 여정도 한 나라의 역사 같은 큰 사건도 모두 보살피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렇고, 그래서 신기합니다. 좋으나 싫으나 들렸던 김연아 일거수 일투족이나 유인촌 아저씨 사고친 소식 같은 수만가지 정보에서 일단 놓여난 상태가 자유로워 그럴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어제 뭐 찾느라 네이버 들어가 보고 처음 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백패커 숙소를 나와 조금 더 길게 머물 방을 구하고,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해 볼까 합니다. 아침 먹고 11시 30분에 있는 제 시드니 오피스에서의 미팅을 시작으로요. 쉽지 않겠지만, 해 봐야지요. 지난 주 이 곳 힐송 처치에서 예배 드리면서, 맞딱뜨리는 앞으로의 상황에서 옛 사람의 습관 말고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나의 예배, 라는생각을 했습니다. 홈리스에 잡리스로 건강한 마음이 무너지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하겠다, 하며 멍하니 바라보던, 조금씩 귀퉁이에 금이 가던 저희들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저희들은 이 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요. 저희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잘 해 볼게요.
이러나 저러나 이 곳에서 다시 적어도 석 달은 정착이니, 부지런히 그 간의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어요.
마음을 다해, 샬롬!
장군은 아직 자고 있어요, 동티모르 함께 다녀 온 개척자들에서 요청한 글이 있어 어제 새벽 두 시까지 잡고 있었는데, 그는 완료했고 저는 실패했습니다. ㅎㅎ 수많은 글을 짧은 글 한 편으로 줄이는 게 잘 되지 않더라구요. 밤새서 끝장을 볼까 했으나 그런 몰골로 인터뷰 가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장군 말에 얌전히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로 시드니 생활 여드레째, 아직 오페라 하우스조차 가 보지 않은 게으른 여행객입니다. 아직 둘 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아서,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면서 하이드 파크나 보타닉 가든에서 쉰다거나, 거대한 세인트 메리 성당을 아, 여기가 거기야? 하고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습니다. 동네 마트에서 매일매일 장은 보고, 책방은 기웃댑니다.
그런데 매일매일은 참 짧습니다. 일 없이 바쁘다는 건 이런 경우인가 봐요. 시드니 모든 곳을 걸어 다니고 있어 한 번 나갔다 하면 걷는 데만 두세시간이 훌쩍 가고, 웬만하면 밥을 해 먹고 있으니 먹을 궁리하는 데도 시간이 가고요. 너 시드니 오피스 갈 때 이것과 다른 몰골로 가면 곤란해 응?, 하고 회사에 있을 적 사진 하나를 메일로 보내신 대표님 경고에 아 제길, 귀신 같기는, 투덜대며 비싼 시드니에서 상설할인매장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아, 시드니 도착하고 몇 일은, 문 연 폐가 상태였던 블로그를 뜯어 고쳤습니다. "개발자란 방법을 찾아볼 생각도 않고 일단 어렵다고 하는 구태의연한 인간들", "기획자란 구체화시킬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디어만 들이미는 사나운 인간들"이라고 혹독하게 서로를 비난하던 날들이 이틀 정도의 밤샘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서로 원하던 모양의 블로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갖게 됐습니다. 뭐야, 이 휑한 걸 하느라 왜 밤을 새? 하실 지 모르지만, 언제나 어려운 건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니까요. ㅎㅎ 여전히 집만 있고 아직 거의 채우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제부터 정리해 볼까 합니다. 그래도 묵혀 둔 큰 숙제를 하나 마친 느낌이라, 둘 다 마음이 개운합니다.
그러니 장군은, 건강합니다. 깨끗이 나았고, 아직은 별다른 후유증이 없어 보입니다. 저와 싸워 가며 블로그 뜯어 고칠 의욕도 기운도 있습니다. 다만 살이 좀 더 빠져서 그제는 지오다노에서 면바지 사이즈 30을 사서 입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호리호리하니 예쁩니다. 여기서 근육만 좀 키워보자, 하고 (당연히 그가 아니고 제가) 의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저희가 알고 지낸 지 10년째, 제가 그보다 더 많이 먹는 시절, 그에게 때마다 "더 먹어"를 연발하는 시절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요새 신정환 덕분에 모두 뎅기열을 알게 됐다지요? 저희는 늘 트렌드를 앞서 갑니다, 아시잖아요. ㅋ
저 역시, 어느 때보다 건강합니다. 장군은 자기가 아파 제가 아플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합니다. 그러게요, 장군이 앓을 때 저 역시 좀 아팠으나, 제게 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토실토실합니다. 적도 근처에서 한 달 반을 지내면 쪽 빠질 줄 알았는데 왠걸요, 저는 음식도 안 가리고 머리만 대면 잘 자고, 덥지만 더워서 혀 빼물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도 아니었고, 스트레스 안 받고, 그저, 잘 지냈습니다.
여행은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그 많은 이야기들을 짧게 할 재간이 없어 뭉뚱그리자면 지금으로선 마치 결혼처럼, 상상보다 훨씬 더 진폭이 큰 경험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무척 행복하나 벌써 멈추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끝없이 즐겁지만 죽도록 힘이 듭니다. 많이 웃었지만 또 많이 크게 오래 울었습니다. 아직은 앞으로에 대한 생각은 들어설 틈 없이 저희들 자신에 대한 직면과 지난 날들에 대한 생각에 신나게 얻어 맞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분명하게, 저희들이 아주 조금씩 예민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하나님이라는 분이 실재하시고, 말씀하시고, 보잘것없는 우리 두 사람의 인생과 여정도 한 나라의 역사 같은 큰 사건도 모두 보살피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렇고, 그래서 신기합니다. 좋으나 싫으나 들렸던 김연아 일거수 일투족이나 유인촌 아저씨 사고친 소식 같은 수만가지 정보에서 일단 놓여난 상태가 자유로워 그럴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어제 뭐 찾느라 네이버 들어가 보고 처음 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백패커 숙소를 나와 조금 더 길게 머물 방을 구하고,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해 볼까 합니다. 아침 먹고 11시 30분에 있는 제 시드니 오피스에서의 미팅을 시작으로요. 쉽지 않겠지만, 해 봐야지요. 지난 주 이 곳 힐송 처치에서 예배 드리면서, 맞딱뜨리는 앞으로의 상황에서 옛 사람의 습관 말고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나의 예배, 라는생각을 했습니다. 홈리스에 잡리스로 건강한 마음이 무너지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하겠다, 하며 멍하니 바라보던, 조금씩 귀퉁이에 금이 가던 저희들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저희들은 이 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요. 저희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잘 해 볼게요.
이러나 저러나 이 곳에서 다시 적어도 석 달은 정착이니, 부지런히 그 간의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어요.
마음을 다해,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