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테카포 호수(Lake Tekapo), 가만히 바라보는 눈
크라이스트처치 남서쪽의 테카포 호수로 내려왔다. 도시를 벗어나자, 산 너머에서 레골라스의 군대가 밀고 내려와도 이상할 것 없는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와아. 그런데 이 땅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저 멀리 저런 집이 몇 채나 지어지고 스러졌을까.
이 평원은 할아버지가 죽고 손자가 할아버지 되는 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걸 수천 년 보았겠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운전하던 장군이 말했다.
총칼 들고 전쟁하던 군인도, 평화롭게 양을 치던 양치기도, 금지된 사랑을 나누던 불운한 연인도, 종일 지루히 햇빛을 쪼이던 한량도 채 백 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더구나. 예외 없이 인간의 삶이란 그토록 짧은 것, 곧 지나가는 것이란다.
바람결에 가뭇없이 바스라지는 인간들을 수천 년 보듬은 평원이 타이른다.
겸손하고 또 겸손하길.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 오른쪽으로 호수가 나타났다. 오랜 시간 빙하가 녹아 내리며 암석 가루와 섞여 만들어졌다는 옥색의 물빛이 근사하다. 신비로운 물가를 둘러싼 나무들도, 저 멀리 보이는 산도, 물빛보다 더 물빛을 띈 하늘도 차분하고 고요하게 자리를 지켰다.
초로의 부부가 운영하는 한 게스트하우스에 차를 멈췄다. 우리의 예산 범위에 있는 값싼 숙소다. 그런데 안내 받은 도미토리의 문을 여니, 커다란 창 너머의 뒷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작은 방에 구겨 넣은 서너벌의 이층 침대를 예상했으나, 널찍한 방엔 작은 램프가 놓인 사이드 테이블을 갖춘 정갈한 싱글 침대들이 적당한 간격을 갖추고 놓여 있었다. 말끔하고 예쁜 침대 시트 위에는 쌀쌀한 밤을 염려해 놓인 두터운 여벌의 담요도 있었다. 숙소 문을 열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여는 우리에게, 이런 날은 마치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짐을 풀고 나왔다. 정원 한 쪽에 허브를 기르는 작은 채마밭이 있었다. 필요한 만큼 따 가도 좋다는 팻말이 인심 좋게 붙어 있다. 다른 한 쪽에선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노는 중이다. 본채에 들어가니 거실의 벽난로 옆에서 체스를 즐기던 노부부가 눈인사를 건넨다. 작지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깨끗한 부엌에선 누군가 이른 저녁을 준비 중이다. 우리만큼 젊은 부모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과 머물기도, 우리만큼 젊은 청년이 백발 성성한 부모님과 머물기도 하는 곳이었다. 마치 친구의 부모님 댁처럼 아늑했다.
이튿날이 되었다.
지난 밤, 네 시간 시차가 나는 한국의 밤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거느라 두 시까지 깨어 있었다. 침대에 들기 직전 장군이 이른 아침 해오름을 찍으려 하는데 같이 가겠냐 묻기에 우우우, 고개를 저었었다. 아마 너도 못 갈 걸, 무리하지 마, 중얼대다 눈을 감은 것이 직전의 일 같은데 벌써 날이 밝았다. 큰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니 늦잠을 못 자네, 하며 고개를 돌리니 장군의 침대가 비어 있다.
일어났어? 응, 알람 울리고 더 잘까 하다 나갔지. 일출을 놓치지는 않았는데 해가 호수 저 편에서 떠서 아주 근사하진 않았어. 그래도 좋더라. 볼래?
왁자지껄한 아침 부엌에서 토스터에 빵을 넣고 그릇에 무슬리를 담는 중에 장군이 돌아왔다. 상기된 그의 표정을 보며 문득, 둘이서 하는 여행이라 참 좋구나 생각했다. 내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모자라 우리 속에 담긴 내용까지 같다면 그건 참 지루할 텐데. 따뜻한 부엌에 선 내게 그가 끼치는 시린 아침 공기가, 이 여행이 하나이면서 둘임을, 우리가 각기 다른 내면을 지닌 두 사람임을 상기시킨다. 내민 카메라 안에 담긴 테카포의 물빛과 아침 햇살은 오롯이 그의 세계다.
아침 시간이 지나자 알맹이 빠진 허물처럼 호스텔이 텅 비고, 거실엔 우리 둘만 남았다. 책을 들고 소파에 기댄 장군은 곧 잠이 들었다. 점심 때까지 자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책장을 뒤적이다, 적어 둔 메모를 모아 글을 쓰다, 누군가 남긴 옥수수 가루와 밀가루를 치대 빵을 만들었다. 오븐에 반죽을 넣고 커다란 머그에 차를 우려 소파로 돌아왔다.
곳곳의 정리를 마친 스탭들이 거실의 테이블로 하나 둘 모였다. 먼저 앉아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수고했다, 하며 차를 건넸다. 여행지 호스텔의 스탭들은 그 나라에 잠시 머무는 여행자인 경우가 많았다. 주인 부부는 마치 딸에게 하듯, 이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니, 다음엔 무얼 하고 싶니, 오, 그렇구나, 하고 세심하게 묻고 들었다. 이 호스텔의 아늑한 공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두런두런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와 오븐의 빵냄새가 참 좋았다. 비스듬히 소파에 기대 성경을 열었다. 한 종교학자와 예수의 대화를 읽을 차례다.
명망 있는 종교학자에게 당대의 파격 예수는 궁금하면서도 거슬리는 존재였다. 그는 다분히 예수를 걸고 넘어지려는 의도로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제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는 되묻는다. 선생께서 공부하는 경전엔 뭐라 써 있습니까. 어떤 해석을 내리셨는지요. 그가 답한다. 온 열정과 염원과 체력과 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지요. 또 자신을 살피듯 이웃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예수가 간결히 답한다.
그렇게 하십시오(Do it).
부대끼는 마음을 숨기려, 그는 불필요한 질문을 덧붙인다.
아하... 흠흠... 헌데 말입니다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은 '이웃'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몇 시야?
장군이 부스스 눈을 떴다. 잘 잔 얼굴이다. 점심을 먹고 가든히 차려 입고 길을 나섰다. 호수 곁의 산을 감아 내려오는 세 시간 거리의 트래킹 코스를 걷기로 했다. 날씨가 강강해 걷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가 나오잖아.
읽던 이야기를 꺼냈다. 예수는 종교학자의 질문에 바로 답하는 대신 이야기 하나를 들려 준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여행자를 탈탈 털다 못해 옷까지 벗기고 흠씬 두들겨 반죽음을 해 놓은 뒤 길에 버리고 달아났어요. 다행히도,
곧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들고 도와달라 소리낼 힘은 없어도, 아, 살았구나, 안도했겠지요. 그런데 소리가 멎습니다. 어쩐 일인지, 행인은 쓰러진 사람을 보곤 길을 틀어 방향을 바꿉니다. 그는 목사였습니다. 부상자는 멀어지는 발소리에 절망해 희미한 의식 한 가닥을 더 놓칩니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다가옵니다. 대대로 존경 받는 장로 집안에서 나고 자라 온갖 교계 모임의 리더를 도맡는 경건하고 신실한 청년이었지요. 그 역시 멈춥니다. 마치 커다란 로드킬을 본 듯 흠칫 놀란 그가 곁길로 바쁘게 피해 갑니다.
해가 뉘엿뉘엿 눕고 그의 몸이 식어갈 때쯤, 이번엔 피부색이 다른 한 사람이 그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주노동자인 아버지와 평생 시골장에서 생선을 팔던 어머니를 둔 청년이었지요. 어머니 대신 생선을 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혼잣길에선 생각이 많아지니, 자신만 보면 영문 모르게 얼굴 찌푸리는 사람들 등쌀에 일찍 발끊은 학교와, 별다르지 않았던 교회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의 눈에 죽어가는 여행자가 들어옵니다. 모든 생각이 멈추고 심장이 덜컥 내려 앉습니다. 재빨리 달려가 그를 살핍니다. 얼마나 오래 여기 이렇게 있었던 거야! 하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요.
시체나 다름 없는 그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음을 확인한 청년은, 어설프게 지혈을 하고 제 옷으로 차디찬 부상자의 몸을 감싸고는 타고 온 낡은 오토바이에 태워 가까운 여관으로 갑니다. 거지 꼴을 한 반 송장을 업은 피부 까만 청년이 환영받을 리 없지요. 그 눈빛이 그에겐 익숙했을 겁니다. 그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는 여관 주인 눈치를 보며 생전 처음 보는, 의식이 없어 자신을 기억도 못할 여행자를 밤새 돌봅니다.
다음 날 아침, 청년은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몇 장을 여관 주인에게 건넵니다. 아.. 아주머니, 저 사람 좀 잘 돌봐 주세요. 호..혹시 이걸로 모자라면, 다녀 오는 길에 갚을게요. 부탁드립니다.
예수는 종교학자에게 묻는다. 선생께서 여행자라 칩시다. 누가 이웃입니까. 종교학자가 떨떠름하게 답한다. 그야 물론.. 그를 실제로 도운 이겠지요. 예수는 다시금 담담히 답한다.
그 담담함이 걸려. 기만적인 종교학자나, 죽어 가는 사람 두고 돌아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투 말이야. 별다른 부연을 하지도 탓하지도 않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아.
여행자를 피해 간 목사와 경건한 교회 청년의 그 날 저녁을 상상해 본다.
저녁상 앞에서 짐짓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혹시 죽었다면 부정하게 시체를 만지는 꼴이 되니 함부로 다가가 율법을 어길 수는 없고... 게다가 약속에 늦어 서두르는 중이었거든. 어찌해야 하나 고심 끝에 돌아서긴 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휴우. 그는 무사할까요? 주께서 그를 살려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예수는 그들의 그런 애끊는 심정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 번뇌와 고민에 대해 설명할 공간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짤막하게 서술한다 - 발길을 돌렸다(angled across the other side), 피했다(avoided). 삶 대신 거듭 질문을 던지는 종교학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무심한 시선이 서늘하게 내게로 향한다. 숱하게 나눈 우리들의 질문과, 감상과, 눈물과, 인정과, 안도와, 바로 뒤이은 어제의 예능 프로에 대한 품평에.
언덕 위의 벤치에 앉았다. 옷깃이 후르륵 날릴 만큼 바람이 제법 센데도 호수는 동요가 없다. 아마 오랫동안 그렇게, 호수에 선 온갖 인간들을 지켜보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 선한 목자 교회(Good Shepherd's Church) 가 보인다. 테카포 호수의 개척자(Pioneer)를 기념해 세웠다는 교회 머릿돌의 문구, 발견도 아니고 개척이라니, 그 오만함이 작은 돌담 쌓인 소담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움직임 없이 여기 있어 온 존재 앞에서 "너를 개척한 것은 나!" 하며 경망스레 나부댄 그들은 민망함을 모르는 치들이 아닌지. 그러나 테카포는 그 또한 말없이 바라보았을 거다. 거센 파도로 삼켜버리나, 폭풍우를 일으켜 흔드는 일 없이 그저 가만히.
고요히 바라보는 눈만큼 힘이 되는 격려는 없다. 그러나 내겐, 그렇게 바라보는 눈만큼 무서운 질책도 없었다.
테카포는 그런 눈을 지닌 호수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품고 인간을 응시하는, 부드럽고 강한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