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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 동티모르 ('10.07-09)

13. 라하네의 하루

06:30

뒷산에서 들리는 월드컵 응원 소리같기도, 아비규환같기도 한 아우성에 잠을 깬다.
첫 날 아침엔 마을 사람들이 크게 싸우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일어났었다.

아우성치는 그들은, 닭과 돼지.

라하네의 닭은 돼지처럼 울고 돼지는 닭처럼 운다.
알람을 매일 맞춰 놓지만 알람이 울리기 전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닭돼지들 덕분에.

눈을 뜨면
아침다운 햇살이 노랗게 방 안으로 들어오고,
아침 바람이 커튼을 밀어올린다.

그러나 아침 바람도 장군을 밀어올리지는 못했..
일어나 바람이 안으로 잘 들어오도록 커튼을 묶어 올리는 사이 다른 이들도 하나 둘 일어나 침낭을 정리하고 모기장을 말아 올린다. 아침 당번 팀은 장바구니를 메고 시장으로 나서고, 몇몇은 집과 집 주변에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고, 몇몇은 불을 피워 차 마실 물을 끓인다. 모래 먼지가 섞였음에도, 차가 거의 없는 마을의 아침 공기는 맑아서 자꾸 크게 숨을 들이쉬게 된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07:20

물이 끓고 시장에 간 사람들이 돌아오면, 다 함께 모여 아침을 먹는다.


평화 캠프에서는 매 끼니마다 밥먹기 전 ‘땡큐송’을 불렀다.
장군의 제안에 따라 아침엔 노래 대신 각자 잠시 눈을 감고 ‘땡큐’하기로 했다 - 땅에, 하늘에, 사람에, 어제의 일들에 오늘의 일들에,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아침 식사 메뉴는 자콥(Jacob)네 가게에서 사 온 튀긴 바나나 피상 고렝, 시장에서 사 온 둥근 빵과 빨간 빠나나, 그리고 차와 커피다. 일곱 명이 마실 찻물이 끓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빨라야 반 시간이라 아침이 아니면 아무도 차 마실 엄두를 낼 수가 없고, 아침의 차 한 잔은 단 하루도 단 한 사람도 거른 일 없는 완소 메뉴다. 생각해 보면 차 뿐 아니라 단 한 끼도 단 한 사람도 끼니를 거른 일이 없다.

이 시간쯤이면 벌써 아이들은 축구 시작, 먼지가 뭉게뭉게

08:20

설겆이를 하고 나면 각자 시간을 갖는다. 빨래하고, 샤워하고, 산책하고, 글쓰고, 책 읽고, 모자란 아침 잠을 더 자기도 하는 일곱 사람의 일곱 가지 아침 스케줄.

아이들은 미리부터 놀자고 문 앞에 와 기다리지만,
유독 프라이버시가 없고 종일 힘이 많이 드는 우리 집 상황 탓인지 이 시간을 양보하고 아이들과 노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09:30

마을의 상황과 요청에 따라 수업이 오전에 있기도 오후에 있기도 한데, 라하네는 오후 2시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그러니 오전은 팀미팅과 수업 준비 시간, 올가 선생님의 떼뚬 시간으로 아침 모임을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로스팔로스 사전 교육에서도 기본적인 떼뚬을 배우기는 했지만 올가가 그 날 그 날의 수업에 필요한 떼뚬어 몇 문장을 준비해 가르쳐 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참 잘했어요 씨스터 애비 으히히

떼뚬 수업 뒤엔 팀 별로 흩어져 수업 준비를 한다.

라하네에서 평화학교는
유치부와 초등부로 나뉘어 한 반씩 열린다. 유치부는 애비, 영희, 짤리가 통역 자원봉사자인 알렉스와 함께, 초등부는 장, 올가, 벤똥, 유끼가 맡았다.

초등부 벤똥Bendon & 유치부 영희Younghee
크레파스로 노래 가사도 써야 하고, 박스 종이를 오려 명찰도 만들어야 하고, 수업 시나리오도 짜야 하는 바쁜 아침 시간.

열한 시쯤 되면 몇몇은 다시 점심 준비를 위해 동네의 와룽(warung, 레스토랑)으로 떠난다.
점심 저녁은 직접 요리해 먹는 게 원칙이지만 첫 날 점심 당번이었던 나와 장군이 정오의 땡볕에 불 지펴 밥을 하곤 먹지도 못하고 드러누운 전례가 있고, 먹고 치우는 게 큰 일이라 그러고 나면 수업 직전에 점검할 시간이 모자라 점심은 전 날 저녁에 넉넉히 해 둔 밥에 반찬을 사 와서 먹기로 했다. 기쁘게도 3달러면 일곱 명이 충분히 먹을 반찬 두세가지와 약간의 과일을 살 수 있다.
 
소이 소스만 있으면 코브라 고기도 먹을 수 있을 듯
먹은 것을 치우고 나면 수업 준비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잠깐 낮잠을 자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은 한참 전부터 문 앞에 진을 치고 있다.
 

14:00

수업 시작.

명찰을 만든 아이들은 반 별로 쉰 명이 넘지만, 매일 수업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서른 남짓이다.

수업은 보통 한 시간, 길면 한 시간 반 정도가 진행된다.
처음엔 하루 중 반 나절은 하는 ‘종일 학교’일 거라 생각했는데 통역을 거쳐야 하는 수업에 아이들이 그렇게 집중하지도 못할 뿐더러 한 시간 반의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옛날 교회에서 하던 여름성경학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종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 프로그램을 다 어떻게 기획하고 실행해 냈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나 신비한 기독교 집사님들의 업무 추진력과 헌신도.
 
수업을 마치고도 아이들은 떠날 줄을 모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바꿔 가르쳐 준 "하우 하도미 다메 hau hadomi dame(나는 평화를 사랑합니다)"계단 앞에 앉아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기도 하고(대부분 못 알아듣지만),
그 날 배운 노래를 스무번 백번 끊임없이 부르자고도 하고, 손에 한글로, 일본어로, 한문으로 이름을 써 달라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수업 후 노는 시간이 수업보다 길고,
어쩌면 아이들이 기다리는 건 수업보다도 수업이 끝나고 우리와 노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16:30

늦은 오후엔 다시 모여 서로의 반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수업을 평가하고
다음 날 수업 내용에 대해서도 함께 간단하게 의논을 한다. 커리큘럼 북이 있지만 많은 부분 아이들 수준과 상황에 맞게 변형이 필요하다.
 
하루 세 끼는 참 빨리도 돌아와
다섯시가 되면 다시 저녁팀은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간다. 50센트도 우리에겐 큰 돈이라 두부 한 모, 겨자잎 한 묶음을 사는데도 몇 곳의 가게를 들르고 흥정을 한다.

부엌에서는 불을 피워 쌀을 씻어 안치고, 몇몇은 밥하는 데 필요한 물을 길으러 부지런히 화장실을 들락인다. 우리 생활 중 청소하러, 밥하러, 정리하러 물 긷는 일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양동이는 무겁고, 화장실은 너무 멀다. 

19:00

가끔은 부엌 근처의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 앉아 저녁을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때까지도 멈추지 않는 축구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직 바깥이 새까만 밤은 아니지만 실내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늘 저녁 시간엔 테이블에 초를 밝힌다. 우아하다기보다는 흡혈귀 프란체스카의 깊고 어두운 성의 저녁 식탁이 떠오르는 장면.

그러나 장면이야 어떻건 저녁은 몸도 마음도 종일의 긴장이 풀린 가장 즐거운 시간,
‘네 나라에서 가장 이상한 음식’ 따위의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다.
우리가 꼽은 가장 이상하고도 이상한 음식은 일본의 ‘닭벼슬 스시’. 

식사를 마치면 곧 하늘이 새까만 밤이 된다.
동네 청년들과 아이들이 학교 문 앞에 진을 치고 앉아 노래와 춤과 카드놀이를 시작하는 시간.
우리들은 랜턴을 입에 물고 설겆이하는 시간.
 

20:00

“매일의 기쁨” - 강으로 샤워하러 갈 시간!

깨끗한 옷과 샤워 도구와 빨래거리를 검은 양동이에 쟁여 랜턴을 들고 룰루랄라 길을 떠난다.
몇몇은 불 없고 비좁은 학교 뒤 화장실에서, 몇몇은 아침 강에서 옷을 입은 채 샤워를 하기도 했지만, 의기 투합한 벤똥과 나는 매일 매일 강으로 샤워를 갔다. 깊은 강 골짜기 달빛 아래에서 즐기는 샤워다. 당연히 거추장스러운 옷은 입지 않는다. 물이 허리께까지만 왔어도 우아하게 수영도 잠수도 즐겼겠지만 애처롭게도 우리 강은 '무릎'이 최고 수심, 벗고 씻는 것이 실은 참 보기에 애처로운 풍경이었을 거다. 

가로등이나 다른 불빛이 없어도 달빛이 환해 나중엔 랜턴 없이도 불편함이 없었고
그건 눈 밝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데도 아무 불편함이 없음을 의미했지만
우리는 뻔뻔하게 마지막날까지 맨 몸 샤워를 포기하지 않았다. 

철 든 후 공중 목욕탕도 거의 가지 않는 내게 타인과 보름 내내 샤워를 같이 하는 건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일이라 하니 벤똥은 “매일의 기쁨”이야말로 혈맹보다 더한 동맹이라며 감격했고, 내게 남편은 이미 있으니 기꺼이 내 아내가 되겠노라 했다.

우리들의 '강'

21:00

장군의 제안으로 첫 날 저녁 각자 ‘인생 그래프’를 그렸고, 이레 동안은 매일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각자의 그래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삶이 상승하는 변곡점, 절정의 순간, 다시 하락하는 변곡점, 그리고 현재와 미래.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삶의 궤적을 나눌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나, 드물게,
기꺼이 마음을 열어 나와 너의 세월을 이야기하고 들을 기회가 오는 관계가 있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오롯이 집중받고 긍정받는 것만으로도 삶은 큰 위로를 받는다. 특별하고 또 특별한 순간.

모두들 좋아하며 기다렸고 또 그 날의 주인공에게 마음을 다해 눈과 귀를 열었던 그 시간에 우리는
이해받고 이해하고, 인정받고 인정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의 공간을 넓혔다.

돌아보면 여러 모로 힘들었던 라하네의 마을 생활 중
물 길으러 가려 양동이를 찾으면 누군가 벌써 길을 나섰었고
이미 사라졌으리라 여겼던 맛있는 것은 늘 다른 이의 몫이 남아 있었다.
누가 더하고 덜할 것 없이 우애 있게 지낸 것은 아마도 그 마음의 공간 덕분이었으리라.

여유로운 밤 분위기를 즐기며 이야기하다 집을 정리하고, 이부자리를 깔고, 문단속을 하고 마지막으로 촛불을 끈 후 잠자리에 들면 열시 반 쯤.

티모르의 그 교실 바닥에서는 늘 달게 잠을 잤다.
한 번도 깨지 않고, 나쁜 꿈을 꾸지 않고.
 
06:00

부지런한 닭돼지들이 아우성친다.
눈을 뜬다.

다시 시작되는 하루- 비바 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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