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집을 옮겼다.
이 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까, 어디서 살까 내내 고민 중이던 지난 주 금요일,
장군이 밭은 기침 때문에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잠을 설쳤다.
뜨거운 찜질팩을 가슴에 얹어 주다가 갑자기 울컥, '어떻게' 따위 상관 없이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
새벽 네 시부터 교민 포털, 호주 포털, 호주 부동산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몇 집을 찾았다.
또다시 속상하고 절박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도의 집중력 - 비싸지 않고, 너무 멀지 않고, 거실 쉐어 같은 못된 짓 하지 않고, 바닥이 카펫 아닌 나무인 것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집들로 고르고 나니 너댓 시간이 갔다.
그 날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집을 보러 다녔고
이 집을 보자마자 계약했다.
그리고 어제,
퇴근하고 마지막 저녁을 차려 먹고, 막 정들기 시작한 동생들과 인사하고 사진 찍고,
백팩을 메고 또 다른 짐들을 이고지고, 퇴근 시간 기차 속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이사했다.
떠나기 전엔 시드니에서 백패커 숙소 한 번, 오래 머물 집 한 번 정도를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발리에서 장군이 뎅기를 앓으면서 계획이 변경됐고, 이 곳에서 예상치 않았던 상황이 생기면서
결국 세 번째 이사, 네 번째 집을 만났다. 집도 절도 연고도 없는 외지인에게 타지 생활은 쉽지 않다.
이 곳은 도심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애쉬필드Ashfield라는 작은 마을.
조용한 주택가인데, 한국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근처에 아시안 마트도 없다.
우리 집에는
우리보다 한 살 많은 한국인 윤미Yunmi와 세 살 많은 오지Aussie 쉐인Shayne 부부,
그리고 낯가리다 먹을 것만 보면 친한 척 하는 토로Toro와 머핀Muffin이 산다.
둘 다 워낙 깔끔한 성격의 사람들인 것 같아 지저분한 우리에게 좀 부담이 되지만
그 덕에 집이 참 깨끗해서 좋고, 우리 방도 제대로 된 나무 가구, 나무 바닥 덕에 정말 집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집에서 지낸 만 하루동안 장군은 기침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 옮기길 잘했다.
시드니를 좋아하진 않지만 집 구하고 옮기는 일이 고되서
농장 찾아 도시를 떠날 때까지 몇 달은 이 곳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러나 장군의 구직이 끝나기 전까지는 멜번, 캔버라, 시드니 어디에 가게 될 지 알 수가 없다.
안 옮기게 될 거야, 시드니에 머물게 될 거야, 서로에게 얘기하면서
어제 짐정리를 마치자마자 그 동안 미뤄뒀던 소스, 소소한 부엌 살림들을 모두 구입했다.
한국에서 받기로 했던 옷가지와 한국 양념들, 몇 가지 살림도 여기서 받기로 했다.
만약 장군의 회사 문제로 다른 도시로 가게 된다면
이번엔 정말 한국에서도 해 보지 않은 장거리 이사가 될 거다.
우리 둘이 이고 지고 들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짐의 양도 어제 분량이 최대치였다.
옮기지 않아야 할 텐데.
옮기지 않게 되리라는 바람을 굳히는 의미로
지인들을 위한 포토 집들이 포스팅 실시.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우리 방과 거실 입구, 왼쪽으로 쉐인 부부의 방과 욕실 입구가 있습니다.
다시 왼쪽으로 몸을 틀면 거실이예요. 정면은 부엌 입구. 쉐인은 CD와 DVD를 무척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거실 풍경
기타도 있어요. 쉐인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기타 쪽에서 본 거실 풍경. 앵글 탓에 커 보이지만 자그마한 공간입니다.
부엌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이렇게 생긴 거실이예요.
부엌, 가스레인지 대신 그릴 비슷한 인덕션레인지를 쓰는데, 매 끼 해 먹는 우리들의 숙제.
깔끔한 부엌 모습. 이 곳에 산 지 2년이라는데, 무척 깨끗한 사람들인 듯.
이제부터 우리 방!
작은 방이예요. 방도 작은데 TV는 치워 달라 할까, 이 곳 방송 볼 겸 놔둘까 고민 중입니다.
침대에 올라가서 보면 이렇게 생겼어, 라고 장군이 말하더군요.
아주 넉넉한 서랍장도 있고요
보시다시피 2층 침대. 괜찮다 했어요. 가끔 추우면 한 침대에서 붙어 자도 괜찮은 사이즈의 싱글 베드니까요.
조악한 합판 조립 책상, 플라스틱 의자 아닌 나무 책걸상에 감동했습니다. 네. 감동적이었어요.
책상 쪽에서 보면 이렇게 보여, 라고 장군이 말하더군요.
아침에 책상 위 창을 열고 본 바깥 풍경. 조용한 동네 같아요.
그리고...
이 녀석이 토로Toro입니다. 늘 갸우뚱한 얼굴로 오빠언니는 누구야? 뭐해? 하는 것 같은 녀석.
우리 방을 호시탐탐 엿보는 또 한 녀석.
머핀Muffin, 살금살금 오기에 너는 너무 크단다. 한 번만 더 쿠키 봉지에 손 넣으면 쎄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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