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근황 포스팅! 해리 아버지, 볼드모트를 피해 우리 교회로 숨어들었.. 몰두하는 자들의 눈빛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토로는 몰입하는 표정도 어딘지 좀 모자란..)
장군은 새로운 타이쿤을 시작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울루물루라는 동네의 스테이크&크랩 하우스 킹슬리 Kingsley에서요. 어느 날 웨이터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키친핸드는 필요 없니? 하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는데, 삼십 분만에 전화가 왔고, 세 시간만에 면접을 봤고, 옮기기로 했어요. 구인 광고는 내지 않고 생각은 하고 있었던 차였나 봐요. 절묘한 타이밍이었지요. 스시집 정리할 말미를 열흘 정도 받았는데, 그 사이 장군이 오지 샵(Aussie shop, 현지인 가게)으로 옮긴다는 말에 저도 데려가 주세요, 하며 들썩인 스시집 동생들로부터 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나중에 풀어 놓을 기회가 있겠지요. 타지 나온 어린 친구들 등쳐 먹으려는 한국인들의 비즈니스, 정말이지 망했으면 좋겠습니다. 워킹 홀리데이, 저희는 어지간한 이들에겐 추천하지 않으려고 해요.
시간은 흘러 흘러, 계약서 쓰고, 회사 소개 자료 받고, 세금 뗀 웨이지를 계좌로 받는 호주 레스토랑 직원이 된 지 사흘 째 - 그는 주로 접시 닦고 부엌 정리하고 야채 손질하고 라면 박스만한 버터 쪼개는 일들을 한답니다.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세 시 반까지 여섯시간 반 근무, 더 이상 열 두시에 집에 오는 밤근무는 없어 애비도 안심. 물론 일요일은 쉬고요. 아, 스시집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오른 보수 덕에 그는 이제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할 때만큼 돈을 법니다. ..네, 호주는 인건비가 비싼 나라니까요.
애비는 한동안 바빴습니다. 회사 일이 좀 많았어요. 정점은 찍고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지만 아직도 '이상적인 프리랜서의 한가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1월에 서울발 호주 진행 프로젝트가 하나 생겨서 그 일까지 하고 마무리할지, 예정대로 연말로 그만두고 장군 옆에서 양파를 썰 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호주 다른 도시도 가 볼 수 있는 프로젝트라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회사엔 쭉 걸어서 출근했는데, 꾀가 나서 지난 주말 중고 시장에서 벼르던 자전거를 한 대 샀어요. 6단 기어 26인치 휠, 멀쩡해 보이는 녀석이 단 돈 25불 - 단 돈 25불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사흘만에 깨달았지만, 그래도 정들이고 있습니다.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가 자전거로는 4-50분 남짓, 그러면 집 문 닫고 회사 문 열기까지 트레인 타고 출퇴근하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걷는 게 꾀나서 선택한 자전거가 비교 안 되게 더 힘들어요. 적응하느라 꼬리뼈부터 온 몸을 다 앓는 중입니다.
동네 생활은 아주 즐겁습니다. 함께 사는 쉐인 윤미 부부와 별 탈 없이, 머핀 토로와는 투닥대며 잘 지냅니다. 저희가 사는 애쉬필드는 석양이 근사한 곳이예요.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 마트에 장보러 가는 길에 감탄하며 서곤 하지요. 지은 지 몇 십년 된 집과 유닛(4-5층 정도의 빌라)들이 낮게 늘어선 거리에 앉는 노을이라 더 운치 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저희 집도 60년이나 되었다고 해요. 보온도 방음도 잘 안 되는 우리 방 낡은 나무 창은 태풍이 온 날 밤새 덜컹거렸어요. 수십년을 그랬을 텐데, 이 집을 거쳐간 사람 누구 하나 성능 좋은 겹유리창으로 바꾸지 않고 온 집안 창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무던하기도 하다 생각했어요. 애초부터 단단하게 짓고, 바삐 새 것으로 갈아 치우는 대신 오래오래 조금씩 돌보며 사는 이 곳 사람들의 방식을 부러워하는 중입니다.
정들기 시작한 세인트존 교회(St.John's)에 다니는 일도 무척 즐겁습니다.
장과 애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즐겁고 건강하고, 무엇보다 평화롭게요.
아, 빼 놓을 수 없는 토로와 머핀의 근황도!
오로지 한 가지에의 추구. 그러고보니 늘 한결 같아서 근황이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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