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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Australia, '10.09-'11.03)

실험 I

네 주를 한 달의 단위로 생각할 때 우리의 씀씀이는 대략 아래와 같다. 

교통비 이백-이백오십 불
휴대폰 최소 선불 카드 두 개 육십 불

공과금, 쌀, 화장지 포함한 집세 팔백 불
그 외 예비비 포함 식비와 물건 구입 등의 생활비 이삼백 불

이 곳에서 벌어 보내는 후원금과 한국에 보내려고 조금씩 사는 것들이 몇백 불

치즈나 홍차처럼 우리에겐 기호식품, 이들에겐 필수품인 경우엔 이 곳이 더 저렴하기도 하니 아이템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체감한 호주의 물가는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비싸다.

1차 생산물 (농축수산물) 은 0-10% 정도
2차 생산물 (공산품과 가공식품) 은 10-20% 정도
2.5차 생산물 (한국인 마트의 수입 상품들;;) 은 30-40% 정도
3차 생산물 (인간의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상품과 문화적 재화들) 은 50-100%정도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기 살며 여행비를 모으려면 바짝 생활의 군더더기를 빼야 했던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좋은 실험이 되었다 -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해 필요한 최소 생활비에 대한 실험.
다만 그 단순함이 인간의 존엄을 의심케 하는 궁색하고 우울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조건 하에.

덕분에 내가 스스로 지갑을 관리한 나이 이래 가장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다.

둘 다 원래 술담배는 즐기지 않는데다
여기선 챙기지 않을 도리 없는 경조사가 없고
일하는 시간 외엔 늘 함께라 용돈이 거의 필요 없고
책도 음반도 사지 않고, 영화나 공연도 보지 않는다.

대신
주로 하드에 담아 온 영화와 책과 음악과 골라서 보고 듣는다.
가끔 산책 나갈 때 둘이 나눠 마시는 롱블랙이나 밀크티 한 잔, 혹은,
장군이 스시 타이쿤하는 동안 늘 먹던 스시가 외식이었던 셈이고, 때로는,
교회 친구들 혹은 하우스 마이트 쉐인-윤미와 함께 레스토랑에 가는 일도 있긴 하다.
이 곳 친구들에게 선물이 필요할 땐 돈쓰는 대신 직접 구운 찰떡이나 잼을 미리 준비한다.

아, 그제는 쉐인-윤미와 저녁을 먹고 쉐인의 프리 티켓으로 소극장 스탠딩 코미디 쇼를 보았다.
한 주 50불 근처에 머무는 생활비 감각에서 한 끼 20불의 외식은 아주 큰 이벤트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도, 우리가 “쉐인 리스트”라 이름한 싸고 맛있고 양 많은 그의 추천 레스토랑 외식도 즐겁다. 장군이 지금 일하는 울루물루의 레스토랑에선 20불로 에피타이저 한 접시도 먹기 어렵다.

저렴한 인생 - 그런데,
둘 다 이 생활을 윤택하게 느끼고 있다.

시간이 많아 급격히 외연을 넓힌 우리의 요리로 탄생한
애비 케이크를 비롯한 스콘, 케이크, 쿠키, 잼들도 신기하고
늘 집에서 바로바로 같이 해 먹는 따뜻한 음식이 주는 기쁨이 크다.
예상 밖으로 사실 여행이 우리들의 요리 트레이닝을 위한 것이었나 생각될 만큼.

금요일 밤에 대충 다음 주 식단과 필요한 생필품 목록을 짜고 주말에 장을 본다.
특히 먹거리는, 한국에선 잔뜩 사다 놓고 결국 이래저래 버리는 식재료가 적지 않았는데
미리 일주일치 '먹고 싶음' 리스트를 짜고 장을 보면서 충동 구매 품목이 많이 줄었고
'버리지 않는다'를 원칙으로 정하니 남은 재료를 활용하는 요리 아이디어들도 잘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더 (물가를 감안하면 더더욱) 많은 돈을 쓰면서도 자주 옹색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하다 못해 뭘 먹고 싶은지 뭘 먹으면 좋을지조차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일단 장보러 가서 생각 나는 것을 두서없이 사 둔 뒤 적당히 먹고 버리고
정작 먹고 싶은 것 잘 먹고 산다는 느낌은 별로 없어서 그랬을까, 혹은,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밴드왜건스러운 심리로 돈을 써 왔기 때문일까.

차이가 뭘까 생각 중이다.

모든 것이 실은
그럴 만한 시간과 에너지가 있고 삶의 맥락도 뭉텅 잘라냈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이유야 어쨋건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값싸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어. 특히 우리 너무 잘 먹어, 좀 더 소박해도 될 것 같아.

꼭 절반을 보내고 남은 석 달,
생활의 규모를 더 줄여 보아도 좋겠다는 데 둘 다 동의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삶의 이런저런 맥락에서 필요할 비용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더라도
우리 둘이 건강히 사는 데 필요한 최소의 수준을 잘 알면 이전보다 좀 더 잘 살 수 있겠지.
그 수준을 좀 더 낮출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 정말로 좀 더 적게 써도 심신에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것도 실은 '가능하니까' 할 수 있는 짓이라 심플한 삶 실험 운운하는 것이 - 아, 이렇게 말하기는 좀 억울하긴 하다만 - 가진 자의 장난질처럼 불경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쩌면 일생 중 지금 여기서만 허락된 것일지도 모르는 이 지점에서 가능한 한 극단적으로 단순한 소비를 추구하며 사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실험이다.

그리고 아직은, 재미있다.
소비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버리는 것이
마음의 평화와 삶의 안녕을 지키는 적극적 공격 중 하나라 믿었는데
그게 실제 그렇다는 게 어쩐지 조금 산뜻한 기분이라. 무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