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가장 심하게 시달리는 시간은 지났나보다, 생각하고 어제 저녁 장군 오기 전 밥 앉히고 냉이국을 끓이다가...
국이 다 끓기도 전에 주저앉기 시작해 결국 같이 밥도 못 먹고 두 시간을 침대에 묶여 있었다.
코로 들어간 냄새가 온 몸의 신경을 촘촘하고 집요하게 옭아매고 있는 느낌.
구정 지난 후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이 나빠지더니... 아직 돌아오질 않는다.
토하는 멀미가 100이라면, 늘 70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조금 무리하거나 잘못 먹으면 바로 구토 포함 넉다운.
그린 기린 그림이가 잘 있다는 신호니까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아.. 참 힘들다.
너 임신하더니 하루하루 폭삭 늙는구나, 하는 말을, 밥 먹었냐는 인사만큼 자주 듣고 있다.
늙지 않을 수가..! 대충 먹고 하루 걸러 하루 토하고 하루 외출하면 밤새 끙끙 앓는 상태가 두 달째.
인스턴트 먹지 말랬는데, 그걸 생각하며 냉장고 열어 보면 ........ 뭐가 인스턴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약속이 없거나 장군마저 없을 때는 거의 비스킷, 우유, 치즈, 과일, 가끔은 아이스크림, 그리고 엉뚱하게도 라면.
호주에선 사과 대신 과일 삼아 먹던 파프리카를 큰 맘 먹고 여러 개 샀는데, 갑자기 풋내를 못견디고 냉장고에서 썩히는 중이다.
몸에 좋다는 거, 임산부가 먹어야 한다는 거, 이를 테면 고기라던가 생야채라던가.. 누가 코 앞에 갖다 주면 간신히 조금 먹는 고약한 상태.
나중에 의사를 만나면 인스턴트밖에 못 먹겠을 땐 그거라도 먹는 게 나은지 굶는 게 나은지 물어봐야겠다.
임신 1기에는 사실 엄마가 거의 못 먹어도 아기한테는 별 영향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다음 주까지만 잘 지내면 꽉 채워 3개월 지나고 4개월차, 곧 지나간다니까..!
# 2.
사순절이라,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를 읽었다. 아주 부대끼면서. (...그러고 보니 태교에 좋을까.)
인간이니 흠없을 수 없겠지만, 그린 기린 그림이에게 엄마 아빠의 치명적인 인격의 결함이 대물림될까 두렵다.
단테 연구가인 도로시 세이어즈는 정욕, 분노, 탐식을 '뜨거운 마음의 죄'로, 탐욕, 시기, 나태, 교만을 '차가운 마음의 죄'로 분류했다. (..중략..) 예수님은 (...) 차가운 마음의 죄에 속한 것들을 더 신랄하게 꾸짖고 정죄하셨다. (...) 당시 차가운 마음의 죄를 품었던 대표적 인물들은 자기 의에 가득 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으며, 그들은 뜨거운 마음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심하게 경멸했다.
읽어서 부대끼지 않는 죄목(?)이 없지만, 특히나 나는 교만한 데다 장군이 '분노체'로 태어났다고 할 만큼 분노 게이지가 높은데.
그 중 특히나 교만은 모든 교황, 교부, 수도사들이 나머지 죄들의 뿌리가 되는 근본적인 죄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고 보니 '교만하고 툭하면 분노하는'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와는 정반대에 있구나.
그렇지만, 그런 내 속에 아무런 구원도 없고 길도 방법도 없다는 절망이 지배적일 때,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은혜로 그린 기린 그림이에게 부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심어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 3.
<늑대 소년>은 송중기와 박보영이 예쁘다는 것을 빼고는 스토리나 캐릭터나 모든 것이 함량 미달인 영화였다. 장군은 심지어 졸았네.
<대학살의 신>은 원래 연극을 영화로 옮긴 블랙 코미디, 장군과 시종일관 낄낄 재미있게 보았다.
그렇지만 가끔씩 후욱 너무 감정 이입이 되어 답답해질 때면 이거 태교에 좋을까 싶었다.
실은 왓챠에 리스트업해 둔 '보고 싶은 영화'들을 보니..
그 중 태교에 좋을 것 같은 영화가 별로 없다.
좋은 생각만 하고, 예쁜 것 보고, 고운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하라는데.
음.... 일단 아예 뉴스를 보지 말아야겠고.. 영화도 좀 보송보송한 걸로..
다음 영화는, 망했지만 좋은 영화라고 Y 언니가 추천한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그린 기린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주 5일차] 기형아 검사 기간 (0) | 2013.03.28 |
---|---|
[12주 1일차] 아이에게 말 걸기 (0) | 2013.03.12 |
[9주 1일차] 좋은 책 한 권 (0) | 2013.02.18 |
[7주 2일차] 마인드 컨트롤 (0) | 2013.02.05 |
[6주 5일차] 심장 소리 (0) | 2013.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