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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기린 그림

[7주 2일차] 마인드 컨트롤

어제 낮잠 잔다고 모로 누워있다가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려는 걸 눈 꼭 감고 참았는데 

장군이 저녁에 얼굴을 보더니 오른쪽 눈 실핏줄이 터졌단다.


몸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요리 한 가지 하려면 두세번은 주저앉아야 하고,

요즘처럼 물이 안 나오는 때 한 끼 먹고 삼사십분씩 걸리는 설거지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내내 멀미하듯 온 몸의 체액이 출렁이며 온갖 냄새가 코에 스미는 기본 컨디션에, 간간히, 

피잉 현기증이 나거나 숨이 찬다거나 몸이 저리다거나 하는 옵션 증상이 돌아가며 얹힌다.


그래도 이게 심한 입덧은 아닌 것 같은데, 

변기를 붙잡고 살았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토하지 않고 먹을 수도 있고, 

천천히 움직여서 샤워를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일상 생활이 모조리 흐트러질 정도로 안 좋진 않은 것 같은데 니가 지금 엄살을 부리고 있다, 

는 생각에... 스스로가 꼴보기 싫어 몹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를 테면 요리를 하기는 힘들지만 먹을 수는 있다거나.

청소 한 번 하면서 두세번은 주저앉지만 샤워는 할 수 있다거나. 

무언가를 읽을 집중력은 짜낼 수 있지만 글쓰려면 활자가 백지 위에 흩어진다거나.


그제 밤에는 결국 벼락같이 화를 내면서 커피를 들이켜고 새벽 다섯시까지 글을 쓰고는 

그 댓가로 어제 하루 아무것도 못한 채 스물네시간을 모.조.리. 날렸다. 

그렇다고 죽은 듯 잔 것도 아니고, 그냥 끙끙 앓고 동동거리며 내 몸을 어쩌지 못하면서.

장군이 쩔쩔 매는 나를 보더니, 자기 뎅기 걸렸을 때 몸 상태가 그랬다며 나를 웃겼다. 뎅기와 임신이라니!


그 밖에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인지 생각해 봤는데..


1. 먹는 것

 인스턴트 먹지 말라고 의사 샘이 그러셨는데, 인스턴트 아닌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 

 장군 먹는 것도 그렇고, 뭘 먹을지 골라 매 끼니 먹고 치우는 게 꽤 압박. 물이 안 나오니 매번 고행.


2. 만주르 

만주르를, 결국 이 추운 날 밖에 내놓았다. 만주르 냄새를 내가 갑자기 견디기 힘들어진 데다, 다시 털갈이가 시작되면서 온 집안에서 토끼털이 묻어나서다. 그리고 나는 내 한 몸 돌보기도 버거운 이기적인 상태가 된 데다, 장군은 종일 일하면서 나를 돌보고 물 안 나오는 집 건사도 해야 하고 만주르도 돌봐야 하는, 저러다 병나지 않을까 싶은 상황이라.. 결국 만주르를 다른 데로 보내기로 했다. 장군은 내켜하지 않고, 나도 내키지 않는데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만주르가 아주 어릴 떄부터 우리랑 살았다면 이렇게 보낼 생각을 했을까.. 아닐 것 같다. 결국 키우던 남의 애완 동물 받아다 책임도 못 지고 다시 다른 데 전가하는 게 우울하다. 토끼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3. 명절 

생각만 해도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이건 스트레스라기보단 공포에 가깝다.

음식을 그냥 사다가 하자고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그냥 엄마가 다 할게 걱정 말고 신경쓰지 말아라" 하시겠지만,

그건 그냥 음식을 해야 한다는 뜻. 그런데 진심으로 자신이 없다.. 장군도 나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그저 어쩌나 할 뿐.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해야 할 텐데, 

좋은 설교를 들어도 그 때 뿐, 글을 읽어도 그 때 뿐, 요 몇 일은 그냥 실패!


12주나 되어야 몸이 가벼워진다는데,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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