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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기린 그림

[4주 5일차] 남편

맨 처음 몸이 말을 안 듣기에 해 본 테스터에 두 줄이 나왔을 때,

이걸 두 줄이라고 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란하게 흐린 두 줄이었는데, 
어쨋거나 6년이 넘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 줄이라, 바로 장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에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 손에 수제 케이크를 들리고 와락, 안더니 그가 말했다. 


사진 보자마자 막 떨렸어. 정말 신기하더라구.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예정하신 인생 하나가 세상에 오는 거잖아.

그런데 우리한테 보내셨구나. 정말 중요한 손님이 오는구나.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정말 감동한 눈으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가 이 오글거리는 말들을 하는 순간 

어머 오글거려 하고 갈구려는 머리와 달리


그만

마음이 '피어났다'. 

환하게 빛이 쪼이듯이.


아, 이건 이건 좋은 일이구나.


이상한 일이지만 기다렸던 아기인데도

막상 두 줄을 확인했을 때부터 그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유난 떨지 말고 기다려, 하고 스스로 심드렁하게 말한 반면 '기쁘다'는 자각이 없었다.


여행 중에 만난 그 수많은 버려진 아이들,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부모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은데,

부모가 되는데 꼭 생물학적인 내 새끼, 내 유전자를 고집해야 하는 걸까 내내 물었고..

그래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면서도 솔직히 내겐 절실함보다 의무감이 더 큰 상태였다.


게다가 일단은 그저 몸이 불편했다.

그래서 테스터를 한 거였고.


어쨋든,

그리고 두 번째 테스트를 했을 때, 

소변이 닿자마자 진하게 변한 두 줄 테스터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보통은 침대에서 상당히 밍기적대는) 장군은 후다닥 일어나 다시 나를 와락, 안고 좋아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건 참, 기쁜 일이로구나.


그리고 이 일이 기쁜 건,

내가 이 사람과 둘인 덕분이구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장군과 함께 부모가 되는 게 기쁘다. 

담담한 얼굴로 '정말 행복하다'고, 좀처험 하지 않던 말을 하는 이 사람.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이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 덕분에 감사하고 기쁘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기쁘지 않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하루 하루 자고 일어날수록, 조금씩 기쁨이 차오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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